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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보는대로 믿고, 믿는대로 본다 : Seeing is believing

인간은 보는대로 믿고, 믿는대로 본다 : Seeing is believing

우리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일 때 돌아가셨다. 그것도 투병 생활을 약 4년 정도 하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사진이다.

 

아버지 사진이 마땅한 게 없어 중 영정사진으로 아버지의 박사 졸업 사진을 사용했었다.

박사모를 쓰고 찍으신 사진은 지금 내 나이보다 조금 많은, 아버지의 30대 후반에 찍은 사진이다.

 

그래서인지 내 아들은 우리 아버지 사진을 보고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들, 이 분이 너의 할아버지야."라고 말하면

"아니야, 삼촌이야."라고 대답한다.

 

4살짜리 아들의 눈에는 당연히 삼촌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인데, 자기 아빠와 비슷한 또래의 사진을 보고 할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다.

내 아들의 세계관에서 고작 30대 후반의 남자가 할아버지라는 점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아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당연히 30대 후반의 남자는 삼촌뻘이다.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다.

오히려 4살 아들은 이런 면에서 성인들보다 훨씬 순수하고 정직하다.

 

사람들은 본인의 세계관 안에서 믿고, 믿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믿는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설득의 3 원리인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와 일맥상통한다.

로고스는 말의 논리, 파토스는 듣는 사람의 심리 상태, 에토스는 화자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3가지 중 에토스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파토스, 마지막이 로고스라 하였다.

 

설득에서 이성적인 논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호감을 갖고 신뢰하느냐가 핵심이다.

즉, 인간은 감성과 신뢰에 기반한 존재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성적인 논리보다는, 내가 믿고 싶은대로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다.

 

최근 알고리즘의 발달과 더불어 이런 현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우리 시간을 빼앗아가는 대부분의 소셜 미디어들은 알고리즘 베이스로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들 위주로 노출한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욱 중립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어떤 사람은 오늘의 유머는 정치 성향이 없는 사이트라고 말하는 동시에 노무현 재단에 후원을 하면서 자칭 정치 중립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태극기 집회에 나가고 보수 단체를 후원하면서 본인은 중립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술의 발전을 적극 찬성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씁쓸한 부분이다.

거짓 뉴스가 판을 치고 거짓 선동가가 인기를 얻는 세상이 되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기에 아주 딱 좋은 세상이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